四川:天府之国的春节味道

金桥2018-09-13 11:08:30

最近,微信朋友圈被四川一个晒腊肉的“大户人家”刷屏了。这户人家的阳台栏杆上,密密麻麻地挂满了腊肉,仅从视觉上看,浓浓的腊肉味道就扑面而来。难怪网友为此炸了锅,纷纷表示羡慕。

其实,引起“骚动”的并非腊肉,也不是这户人家的“炫富”行为。一年一度的春节,对于中国人来说,是一个为幸福生活狂欢的时节。幅员辽阔的中国,各地春节习俗都有自己的特色,晒腊肉正是四川人民准备重大节日或庆典的信号。网友集中关注晒腊肉的行为,恰恰体现出中国人对新年的期待,也是一种幸福感的释放。

 

香:腊肉是一种四川的年味

味蕾,始终代表着一种城市的味道,对在外漂泊的游子来说,那是最浓郁的家乡滋味。腊肉,顾名思义即是腊月里烟熏过后的咸肉,在四川特产中位居高位,腊肉和腊肠是过年过节、重大节日宴席上不可缺少的开盘菜。腊肉一般是由猪肉经过盐浸渍数日,而后经过谷草或柏树枝条树叶熏烤和凉干的工序。其独特的烟熏的香美味道令食客难以忘却。这里家家户户做腊肉,一次就做很多,春节前制作的腊肉,可以吃到来年

腊肉在四川可是有着悠久的历史,早在周朝的《周礼》《周易》中已有关于“肉甫”和“腊味”的记载。当时朝廷有专管臣民纳贡肉脯的机构和官吏。在民间,学生甚至用成束的干肉赠给老师作为学费或聘礼,这种干肉称为“束修”,这种带有浓郁文化味道的典故,便是腊肉最初的起源吧。

几年前,火遍中国的央视美食节目《舌尖上的中国》,曾经对腊肉进行了报道。根据经验,只要是在镜头上露脸的美食,都能很快被一抢而空。根据中国知名电商购物网站——天猫官方获得的数据显示,《舌尖上的中国2》播出后一周,四川腊肉就售出了上万份。四川当地人自不必说,而对于对四川并不熟悉的外地人来说,分享四川年味,也非腊肉莫属了。

 

甜:买根红甘蔗,来年更红火

在四川成都,红甘蔗也是人们过年不可缺少的一个特产。这种红甘蔗产自四川本地,每逢过年,成都人除了在大街小巷的树枝、窗台、家具、灶头上贴上小伙纸,寓意红红火火之外,还要买几节红甘蔗,讨个“一节更比一节高”的好口彩。

以前每到春节来临的时候,种甘蔗的农民就把一捆捆甘蔗洗得干干净净,用车推着沿街叫卖。这种红甘蔗很便宜,不过几分钱一根,稍微宽裕一些的家庭能买好大一捆,喜洋洋地扛回家,肩上分明是满满的生活希望。

把红甘蔗带回家以后,在里面挑选两根又直又长的供奉在神龛旁边,讨个吉利。当地还有句农谚:春种甘蔗一节,秋收甘蔗一捆,过年往家里买甘蔗就图个“发财”的美好愿望。因此,老成都人还喜欢把红甘蔗放在厨房门口,取“开门见财”的寓意。

 

辣:火锅沸腾起生活的活力

对于四川人民来说,过年和火锅简直是一个最完美的搭配。全家人围坐在一起想用热腾腾的麻辣火锅,呈现出一派和谐与淋漓酣畅相溶之场景和心理感受,营造出一种“同心、同聚、同享、同乐”的文化氛围。男女老少、亲朋好友围着热气腾腾的火锅,把臂共话,举箸大啖,温情荡漾,洋溢着热烈融洽的气氛,和过年团圆的传统文化氛围再契合不过了。

 “火锅”一词既是炊具、盛具的名称,还是技法、“吃”法与炊具、盛具的统一,表现了中国饮食之道蕴含的和谐性和包容性。从原料、汤料的采用到烹调技法的配合,同中求异,使荤与素、生与熟、麻辣与鲜甜、嫩脆与绵烂、清香与浓醇等美妙地结合在一起。
     说起四川火锅的来历,据说早在左思的《三都赋》中就有记载,历史至少在1700年以上,而且还有“日暮汉宫吃毛肚,家家扶得醉人归”的火锅章句。火锅的发祥地准确来说是在重庆,如今重庆虽已成为直辖市,但饮食一派,多数人还是将其划入川菜的范畴的。虽说现在的四川人民已习惯和爱上了夏天吃火锅热上加热的劲儿,但火锅的起源之初还是在冬季。20世纪初的嘉陵江畔,冬日里天寒地冻,朔风凛凛,有小贩便发明了一特制的挑子,挑着它走街串巷地叫卖。挑子的一头是一座红泥小火炉,上置一只带“#”字格的洋铁盒,里面翻滚着黑不溜秋、麻辣成鲜的卤汁;另一头则是盛装牛杂、调料、碗筷、板凳的橱架。这便是现代火锅最初的形式了。

 

천부지국(天府之國, 풍요로운 ) 쓰촨(四川)성의 설날 분위기 

 

최근 위챗 모멘트에 쓰촨(四川) 납육(臘肉, 절여 말린 돼지고기)을 말리는 ‘ 부잣집’ 사진이 올라왔다.  집의 발코니 난간에 납육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데 눈으로만 봤을 뿐인데 짙은 납육의 향이 끝을 찌르는  같았다. 네티즌들이 이에 흥분하며 잇따라 부러움을 표했다.  

 사실 ‘소란 일으킨 납육도 아니고  집의 자랑 아니다. 1년에 1번인 춘절(春節, 음력 ) 중국인들에게 행복한 삶을 즐기는 명절이다. 국토 면적이 넓은 중국 각지의 춘절풍속 저마다의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납육 말리는 것은 쓰촨 사람들이 중요한 명절을 준비하고 있거나, 경축하고 있다는 신호 것이다. 네티즌들이 납육 말리는 것을 집중해서 보는 것은 새해에 대한 중국인들의 기대를 드러낸 것일 뿐만 아니라 행복감의 해방이기도 것이다.

 

향긋한 : 납육은 쓰촨의 새해의  

미뢰는 시종일관 도시의 맛을 대표하고 있으며 밖을 떠도는 여행객에겐 가장 짙은 고향의 맛이다. 납육  그대로 음력 섣달에 훈제한  절인 고기로 쓰촨 특산품 손가락에 꼽힌다. 납육과 라창(臘腸, 중국식 소시지)은 설을   중요한 명절 상차림에 빼놓을 없는 요리이다. 납육은 보통 돼지고기를 소금물에 수일간 절인 볏짚이나, 측백나무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훈제하고 서늘한 곳에서 말리는 순서를 거친다.  독특한 훈제향과 맛은 식객에게 잊지 못할 맛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집집마다 납육을 하는데 번에 많이 하기 때문에 춘절 전에 만든 납육은 이듬해까지 먹을 있다.

 납육은 쓰촨에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일찍이 (周)나라 <주례(周禮)>, <주역(周易)> ‘육포(肉甫)’ ‘납미(臘味)’ 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조정엔 납포를 공물로 바치는 것을 전담하는 기관과 관리가 있었다. 민간에서는 학생들 말린 묶음 고기를 스승에게 학비 또는 선물로 드렸는데 이런 말린 고기는속수(束修)’ 불리었다. 이런 짙은 문화의 맛을 지닌 이야기가 납육의 최초 기원이다. 

   중국 전역을 뜨겁게 달궜던 CCTV 음식프로그램 <혀끝의 중국(舌尖上的中國)>에서 납육에 대한 보도를 적이 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카메라 화면에 선보인 음식이기만 하면 다들 앞다투어 먹어 보려고 한다. 중국 유명 전자상거래업체인 톈마오(天猫)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혀끝의 중국2> 방송 1주  쓰촨 납육이 수만 인분 팔렸다고 한다. 쓰촨 현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쓰촨에 대해 모르는 외지인들까지도 쓰촨 새해 맛을 공유하려면 납육이 아니면   같은 태세였다.  

 

달콤한 : 붉은 사탕수수를 사면 오는 해가 더욱 번창해진다

 쓰촨 청두(成都) 붉은 사탕수수도 사람들이 설을   빠지지 않는 특산품이다.  붉은 사탕수수는 쓰촨 현지에서 나는데 매번 설을  때마다 청두 사람들은 거리와 골목의 나뭇가지, 창턱, 가구, 부뚜막 위에 종이 붙여 번창함을 기원하고  밖에 붉은 사탕수수를 사서명절마다 날로  좋아져라 덕담을 나눈다.

 예전에 매년 춘절만 되면 사탕수수를 심은 농민은 사탕수수 묶음 하나하나를 깨끗이 씻어 차에 싣고 거리로 나가 팔았다. 이런 붉은 사탕수수는 매우 저렴해 1대당   밖에  조금 넉넉한 집에선 많이 사서 기쁨에 차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어깨 위에 짊어진 것은 분명 삶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붉은 사탕수수를 집에 가져오면 집에선 곧고 대를 골라 감실(龕, 신상이나 위패를 모셔 두는 ) 옆에 바치며 길함을 기원했다. 현지 농업에 관한 이런 격언이 있다. 사탕수수 한 마디를 심으면 가을에 한 묶음을 수확하고 설을 쇠는 집 사탕수수를 사서부자가 되는’ 아름다운 소망을 기원했다. 따라서 옛 청두인들은 붉은 사탕수수를 주방 입구에 놓아두기를 좋아했는데 이는 ‘문을 열면 재물이 보인다 뜻을 지니고 있다.

 

매운 : 훠궈(火鍋) 함께 끓어오르는 삶의 활력

 쓰촨 사람들에게 있어 설을 쇠는 것과 훠궈를 먹는 것은 가장 완벽한 조합이다. 온 가족이 펄펄 끓어오르는 마라훠궈(麻辣火鍋) 앞에 둘러앉아 화목함과 호쾌함이 서로 우러지는 장면과 마음 감동을 보여주며 ‘같은 마음으로 같이 모여 같이 나누고 같이 즐기는’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남녀노소, 친지와 친구가 펄펄 끓어오르는 훠궈 앞에 둘러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며 젓가락을 들고 훠궈를 먹는 모습은 온정 흐르고 뜨거운 융합의 분위기가 넘쳐 흐르면서 새해에 같이 모이는 전통문화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훠궈라는 단어는 취사도구, 요리그릇 명칭이자, 조리기법, ‘먹는법과 취사, 요리그릇의 통일된 명칭이기도 한데 중국 음식의 ()가 내포하는 화합과 포용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원료, 탕거리의 채택부터 조리기법의 배합까지 같음 에서도 다름을 추구하며 고기와 야채,  것과 익힌 , 매운 것과 달콤한 , 바삭한 것과 부드러운 , 맑은 탕과 진한 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것이.
   쓰촨 훠궈의 유래에 대해 말하자면 일찍이 좌사(左思)의 <삼도부(三都賦)> 기록되어 있는데  역사가 최소 1700년 이상이나 되었으며 ‘날이 저물면 한나라 궁에서 천엽을 먹고, 집집마다 취한 사람 부축해 돌아가네(日暮漢宮吃毛肚,家家扶得醉人歸)라는 훠궈 관련 문장 있다. 훠궈의 발상지는 정확히 충칭(重慶)으로 오늘날 충칭은 이미 직할시가 되었지만 음식에 있어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아직도 충칭을 쓰촨의 범주 안에 넣는다. 오늘날 쓰촨 사람들은 이미 여름에 훠궈를 먹는 이열치열에 습관이 들었지만 훠궈의 기원 처음 동절기였다. 20세기 초의 자링(嘉陵) 강가, 추운 겨울 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올 때 한 노점상이 특별히 제작한 멜대를 발명해 골목골목마다 지고 다니며 팔았다. 멜대 한쪽엔 붉은 진흙으로 만든 작은 화덕이 있었고 위에는 ‘#’모양의 서양식 깡통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안에는 거무칙칙한 마라(麻辣) 만든 액즙(소금물이나 간장에 오향 등을 넣은 액체) 펄펄 끓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엔  내장, 조미료, 그릇과 젓가락, 의자  주방용품이 있었다. 이것이 현대 훠궈의 최초 형태였다.